신학교육의 현장에서
이종전 교수,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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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신보 기자 작성일21-08-05 10:13본문
이종전 교수,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
교단이 신학연구원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나고 4년을 향하고 있다. 준비되지 못한 시작이었기에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지는 않는다. 시간은 일정한 페이스로 흐른다. 사람의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서 기다렸다가 다시 진행하는 일은 없다. 그 시작이 어떤 것이었든 시간의 흐름과 함께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중이다.
필자가 신학교육을 받던 1970년대 우리교단의 신학교육은 선생님이 없는, 그야말로 과정만 이수하면 되는 학원과 같은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동냥공부’라는 표현을 한다. 우선 교단의 선생님이 없었을 뿐 아니라 과목을 전공한 선생님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당시 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대부분 다른 교단은 물론 다른 교파, 즉 감리교회, 침례교회, 성결교회, 순복음교회 등 다양한 교파의 목사님들이 와서 한 과목씩 가르치셨다. 이것을 교단의 신학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지. 그렇게 교육을 받고 교단의 지도자가 된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5년 전, 교단이 통합을 명분으로 한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흩어지는 교단의 모습을 보면서 당혹스럽고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당당하게 흩어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도, 용납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과거의 신학교육의 문제가 낳은 결과였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동냥공부’를 통해서 과정만 이수를 하면 목사가 되었으니, 거기 어디에 교단의 정신이 있고, 내지는 교단을 구심점으로 하는 신학적인 의식과 전통에 대한 확신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저 우리의 아픔으로 삭힐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4년 전에 대신총회신학연구원이 새롭게 출발했다. 교육을 위한 외적인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교단이 절체절명에 직면한 상황에서 지도자를 양성하지 않는 것은 내일이 없다는 필연적인 결과를 알기에 총회의 결의로 새롭게 연구원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대신총회신학연구원의 교육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은 겉으로 잘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분명 교단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비록 소수이지만 사명을 가지고 연구원에 지원하여 미래의 지도자로 훈련을 받으면서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더 이상 과거처럼 ‘동냥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교단의 교수들만으로 강의를 전담시키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3년 과정을 진행하는 동안 단 1과목만, 그것도 어학부분을 담당할 선생님이 아쉬워서 외부의 강사를 초빙했고, 전 과목을 교단의 선생님들로만 수업을 진행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교단성에 대한 확신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단을 알고, 교단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신학적 소양도 채워가는 것을 본다. 과목마다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교단의 정서가 전달되고, 녹아나면서 피교육생들의 의식에 교단성이 형성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각 선생님들마다 교단과 동떨어진 이야기 자체가 없을 뿐 아니라 공유해야 하는 정서들이 자연스럽게 전달되면서 ‘우리’라고 하는 교단중심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교단신학, 즉 총회신학으로서의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지난 시간 동안에 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교단에 속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었고 보람이다.
우리가 우리의 후보생을 기른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당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단의 미래를 위한 가장 현명하고 확실한 투자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에 대한 의기투합이 이런저런 이유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고 공감을 하면서도 정작 의기투합의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지난 교단 설립 60주년 행사에서 60주년 비전선언문과 그 외의 발제된 글들마다 일관되게 담긴 내용은 교단 신학교의 필요성과 반드시 공교회 신학교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생각이 같다는 것에 소망을 가져본다. 하지만 2015년 이후 지금까지 처음에 의기투합했던 모습은 오히려 점점 쇠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것일지. 무슨 일이 있든, 어떤 상황이든 우리 민족이 일제강점기와 6.25사변을 겪었으면서도 남들이 기적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이 나라와 교회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유를 따지지 않고 교육현장을 만들었고, 지켰고, 공부를 시킨 결과였다. 6.25사변의 피난지에서도 천막을 치고 신학교육을 시킨 결과 한국교회의 오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니 이유와 상황을 넘어 신학교육에 집중할 수 있어야 우리의 미래가 만들어질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