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목사부부, 닫힌 군인교회 문 두드렸다
리모델링 후 전도 접촉점 이뤄··· 군 복음화에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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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신보 기자 작성일23-05-25 14:25본문
김형태 목사(한북노회)가 시무하고 있는 기드온교회는 고성군 간성읍 5790부대 내 위치해있다. 동해안 최북단에 있는 해안소초를 담당, 이곳에서는 매주 특별한 군부대 선교가 일어나고 있다.
1994년 교회 설립 이래 2021년 11월, 김형태 목사 부부가 이곳을 찾았다. 코로나19로 방치된 터라 창고 같은 암흑한 환경과 덤으로 지붕 전체에 누수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지붕에 새는 비만이라도 막아보려 애를 썼습니다. 이를 위한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재능기부할 여러 사람들을 붙여주셨습니다. 재정과 함께 보수작업, 그럴듯한 외관을 가진 지금의 교회를 이루기까지 약 2년간 수많은 손길이 닿았습니다” 이후 김형태 목사 부부는 신병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길 바라며 매주 빵과 음료수를 준비했다. 초반에는 25명까지 햄버거를 먹여왔는데, 규모가 커질수록 군인들이 좋아할 콜라와 빵을 간식으로 나눴다.
웹디자이너 교육까지 받은 김형태 목사는 ppt 시각자료를 활용해 예배를 인도했다. 군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포인트다. 들의 사역을 위한 후원창구도 마련됐다. 소속돼있는 한북노회, 몇 교회에서의 후원 외 성탄절과 추수감사주일 등 주절기 때 부대원을 섬길 수 있는 후원금이 전달됐다. 이와 관련, 유미숙 사모는 “용사들이 변하고, 헌신하는 이들의 모습이 달라졌다. 매주 군종병과 앞에서 찬양을 이끄는 찬양팀 8명 정도가 세워져 풍성한 예배를 드리게 됐다. 아이들에게 돼지볶음, 떡볶이, 여건이 허락되는 경우엔 짜장면까지 먹여오며 군에 와서 군종이 되고, 쾌활해지고, 하나님의 영역 가운데 회복이 일어나는 것을 두 눈으로 목도하고 있다”면서 “신앙은 계승이 아닌 개개인의 믿음임을 감사의 눈물로 느낀다”고 간증하기도 했다.
일반교회는 교제가 이어지지만, 이곳에서는 씨앗을 뿌리고 또 내보내고.. 열매 맺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전도에 전도를 보태서 이 체계를 유지하고, 이곳을 찾는 군인들에게 심리적 안정감과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김 목사 내외가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 초반 7~8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신병들을 만나오면서 세례를 베풀고, 현재는 교회에 놓인 의자 60석 만석을 이뤄냈다. 사실 처음부터 군선교를 꿈꿨던 건 아니었다. 안수집사 시무 시절 그는, 밀림사역을 비전으로 품었다. 이를 위한 출국을 앞두고서 김 목사에게 심근경색이란 위기가 찾아왔다. 심장이 괴사돼 18~20%밖에 제 기능을 못 하게 된 것이다. “아마 그때 제가 말레이시아로 갔다면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 후 2년 동안 요양에 전념했습니다. 과정 가운데 하나님은 우연히 군선교 사역현장을 방문케 하셨고, 저는 필연적으로 이 사역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렇게 군선교가 시작됐다. 2003학번, 45살의 늦깎이 신학은 “늦었으나 아직 기회는 있다”는 말을 몸소 체험케 했다. 화천에 있는 군인교회에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약 10년의 사역을 차곡히 밟았다. 그곳의 신병들은 부대의 대대장을 만나기도 전에 김형태 목사를 먼저 만났다. 신앙적인 이야기를 조금 나누면서, “어떻게 하면 군에서 성실하게 생활할 것인가?” 등의 효율적인 팁과 살아온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 과정은 황금어장을 이룰 기반이 되었다. 거의 모든 신병들이 교회에 나와 주일 예배를 드렸으니 말이다. “해안가 중요 군사지역에 위치한 축복의 교회도 섬기고 있는데, 컨테이너 박스교회로 비가 새서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곳은 중요한 기지라서 심사기간이 깁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병사들의 대우도 달라졌고, 월급도 높습니다. 꽤나 예배당이 부끄러워지는 모양새입니다. 이전에는 모든 시설에서 교회가 앞섰는데, 지금은 완전히 역전이 됐습니다. 시설적인 부분에서도 용사를 오게 하는데 많이 불리합니다”
김 목사는 비만 오면 누수가 일어나는 컨테이너를 보며, 용사들의 발걸음을 재촉할 새 예배당 구축을 계획 중에 있다. 군단에서의 심사가 잘 마무리되어 장마 전 준비과정을 잘 거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 요청했다. 20%의 심장으로 산다는 건, 그에 따른 마땅한 제한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화천에서 10년간 하던 성경공부를 멈추게 됐고, 오전과 오후 총 세 번 드리던 예배를 한 번만 드리게 됐다. “군 복무기간은 18개월이지만 한 청년의 운명이 바뀔 수 있는 놀라운 시간입니다. 그 중요성을 아는 목회자들이 군 목회현장에 와서 다음세대 청년들을 길러내는 분위기가 우리 대한민국 교회 전체에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옛날같이 황금어장은 아니지만, 어쨌든 청년들이 들어오는 곳이 군대입니다. 여기에 한국교회가 정말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몸을 이끌고 10년 내지 15년 봉사하고 떠나겠으나, 그 이후에 청년들을 사랑하는 사명감을 가진 목회자 분들이 오셔서 다음세대를 견고히 세워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약해지는 육체 가운데서도 그가 군사역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청년을 너무나 사랑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 그리고 다음세대를 일으켜야 할 축복의 사명 때문일 것이다.